 
2011년 3월 7일 달 날
아침엔 아직 겨울의 쌀쌀함이 남아 있는 날입니다. 들기를 하며 살얼음이 얼었다고 하니
“따뜻해질려고 그러지요.”하고 민교가 말해줍니다.
달콤한 복숭아 효소 차와 볶은 콩을 먹고 놀이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사다리를 이용해 집짓기를 합니다. 놀이 도중 조안이가 “우리 아빠는 나무꾼이다. 엄마는 선녀고 조인이랑 나는 천사다.”라고 합니다. 아! 조안이네가 그 선녀와 나무꾼 가족이었군요. 다시 세상에 내려와 살고 있었네요.^^ 이어 동화가 “우리 아빠는 용왕님이시다.” 합니다. 민교도 질세라 “우리 아빠는 신하다! 나는 왕이고.”합니다.
조안이가 동인 동진에게 밥을 한 상 차려다 주자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합니다.
밖으로 나가니 경칩에 깨어난 개구리들이 열심히 노래를 하고 우리는 밭으로 달려가 나물을 캡니다. 광대나물과 이름 모를 풀에선 벌써 작은 꽃이 피어났습니다. 유선이는 열심히 나물을 캐고 나머지 아이들은 밭을 이리저리 뛰어 다닙니다. 곧잘 넘어지던 동인 동진이도 오르막 내리막 밭 사이를 이리저리 잘도 뛰어다닙니다. 점심 밥상에 봄나물과 냉잇국이 올라옵니다.
2011년 3월 8일 불 날
논에는 살얼음이 얼고 바람은 여전히 쌀쌀합니다. 버스 안에서 졸던 동인, 동진이도 잠을 깨고는 유치원을 향해 달려갑니다. 오늘은 선생님이 만들어 오신 약식과 귤차를 마시며 호두를 깨 먹습니다. 장난감 나무토막이 망치가 되어 호두를 깹니다. 동하와 민교가 호두를 까서 친구와 동생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남자 아이들은 팽이 돌리기를 합니다. 나무 팽이 뿐 아니라 갖가지 종류의 냄비 뚜껑,구슬 등 돌릴 수 있는 건 다 돌려봅니다.
간식을 먹고 바구니와 호미를 챙겨 나물을 캐러 갑니다. 꽃동산 가는 길에 논둑에 돋아난 냉이를 캡니다. 잠시 후 아이들은 가파른 언덕 오르기에 도전합니다. 동인이와 동진이 유선이는 조안이가 올라가는 법을 알려주고 민교는 긴 막대기를 들고 도움을 줍니다. 7살 동하는 벌써 꼭대기에 올라가 있습니다. 내려올 때는 스스로 터득한 방법인 엉덩이 미끄럼을 타며 내려옵니다. 선생님도 올라와 보라고해서 언덕위로 올라가 보니 세상이 다 내려다보입니다. 봄기운이 올라오고 있는 나무들, 뿌옇게 봄 안개 같은 것으로 둘러싸인 산들, 저만치 보림사도 보이고 군데군데 물기가 있는 논, 호수, 조용히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학교버스와 말없이 햇살을 받고 있는 들판이 보입니다.
오늘도 아이들을 따라 봄을 만나고 돌아옵니다.
2011년 3월 9일 물 날
봄님이 오시는 걸 시샘하는지 차가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오늘도 따뜻한 귤차와 볶은 은행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건 끝없는 상상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깨에 천을 하나씩 두르고는 새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다가 천을 벗고는 고양이가 되어 기어 다닙니다. 동인 동진이는 종이 블럭을 쌓고 그 위에 색깔 천을 씌워 집을 만듭니다. 유선이와 조안이는 나무 사다리를 묶어 울타리를 세우고 그 안에 집을 짓습니다.
민교와 동하는 작은 의자로 자동차를 만듭니다. 소꿉놀이를 이용해 무엇이든 작동할 수 있는 만능 부품들을 채워 넣고 유치원 안을 운전해 돌아다닙니다. 유치원 한쪽에선 물 날마다 하는 빛칠하기를 합니다. 밝은 노랑과 파랑이 만나 연두 빛깔이 생겨나니 봄빛을 만납니다. 그 빛깔들이 아이들의 상상력과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수놓아 집니다.
2011년 3월 10일 나무 날
오늘은 생일잔치가 있는 날입니다. 자유놀이를 짧게 하고 정리를 하니 대번에 아이들이
“오늘은 별로 안 어질렀다.” “오늘은 조금만 논다.”하고 말합니다. 초등 5학년 교실에 모여 생일을 축하해 주고 유선이도 축복을 받습니다. 형님들의 공연도 구경하고 유치원에 돌아와 과일과 떡을 맛나게 먹습니다.
장화를 신고 호미와 바구니를 챙겨 산책을 가는 시간. 오늘은 봄나물을 찾아 축복의 언덕 위쪽으로 가봅니다. 덤불 이불을 덮고 자라고 있던 봄나물을 찾아 바구니에 담습니다. 선생님들은 나물을 캐고 아이들은 쪼르르 냇가로 달려갑니다. 장화에 물이 들어가고 바지가 다 젖어도 조금씩 다가오는 봄님을 맞이하며 신나게 놉니다. 아직 바람은 차지만 나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는 걸 보니 민교 말대로 점점 따뜻해지고 있나 봅니다.
2011년 3월 11일 쇠 날
오늘은 계룡산으로 먼나들이를 가는 날입니다.
학교 버스를 타고 학봉리에 내려 선생님댁으로 갑니다. 햇살이 퍼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따뜻한 차와 약식을 먹고 선생님의 해금 연주도 들어봅니다. 잠시 뒤 햇살이 이 방 끝까지 비춰 들어오고 조안이가 도착해 계룡산을 올라갑니다. 작은 바가지로 약수도 마시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산길을 오릅니다. 다람쥐가 맨 앞에서 날듯이 올라가고 그 뒤를 너무 빨리 가지 말라며 포도가 따라 갑니다. 그리고 풀잎이 바짝 뒤를 다르고 새와 햇님도 넘어지지 않고 잘 올라갑니다. 무지개가 조금 뒤처지긴 하지만 열심히 올라갑니다. 다람쥐가 너무 빨리 올라가는 바람에 징검다리를 지나쳐 저만치 올라가 버려서 모두 다시 내려와 징검다리를 건너 우회전을 합니다. 운이 좋게도 맨 끝에 가던 무지개가 선두가 되어버렸네요.
올라가다 바위가 나타나면 기어오르기도 하고 웅덩이에 도룡용 알도 만져보고 응가도 하고 소변도 보고 간식도 먹고, 점점 속도는 느려집니다. 두 시간여 올라가 너럭바위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습니다. 민교는 밥 한 수저를 퍼서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한 입씩 먹어보라고 합니다. 모두 볶음밥을 싸 왔지만 맛은 다 다릅니다. 서로 한입씩 먹어보며 정을 나누어 줍니다. 경사가 급한 바위는 미끄럼틀이 되고 너럭바위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햇님 달님 연극을 합니다. 매일 반복해 들려줘도 쏙 빠져들어 동화를 듣더니 대사와 줄거리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산할 시간.
올라갈 땐 두 시간이나 걸렸던 산길을 30여분 만에 날듯이 내려옵니다. 아마도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날개가 있는 모양입니다.
작년엔 형님들이 산행을 다녀오는 동안 유치원에서 기다렸던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 첫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니! 참 뿌듯하고 대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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