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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1-01 00:43
유치원 아이들 상강 지낸 이야기 (2011.10.24-10.28.)
 이름 : 대전교사회
조회 : 1,361  

 
2011년 10월 24일 달 날 (상강 1일째)
흐린 하늘에서 가을비가 보슬보슬 내려옵니다. 하루 종일 내려옵니다. 유치원 마당엔 노란 은행잎이 떨어져 소복이 쌓여 있습니다. 유치원으로 달려온 아이들은 지난 흙 날의 벼베기가 재미있었다며 재잘재잘 자랑을 합니다. 따뜻하게 탱자효소 차를 끓여놓으니 민교가 달려와 한 잔 마시고, 유선이와 조안이도 펠트 꿰기를 하며 홀짝홀짝 차를 마십니다. 간식으로 따뜻한 누룽지 죽을 끓여주니 맛있다며 먹습니다. 날이 추워지니 차와 죽이 제철인가 봅니다.
놀이를 하고 아침 열기를 합니다. 왕자님 공주님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큰 절을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납작하게 엎드려 두 손을 귀 옆으로 번쩍 들어 올리는 모습이 참 귀엽습니다. 장난이긴 하지만 아이들을 보며 ‘오늘 하루도 내가 만나는 이들을 하늘 모시듯 모시며 살아야지.’ 하고 생각해 봅니다. 다섯 아이들은 비옷을 입고 민교는 비옷 대신 모자 달린 잠바를 입고 선생님 우산 속으로 쏙 들어옵니다.
오늘은 호미를 하나씩 들고 늦은 가을 고구마를 캐러 갑니다. 유선,민교 동하는 고구마를 캐고 조안이는 밭 끄트머리에 앉아 구경을 한다고 합니다. 동인 동진이는 벌레들을 구경 하느라 고구마는 뒷전입니다. 호미질을 할 때마다 어른 손가락만한 지렁이들이 깜짝 놀라 꿈틀거립니다. 민교가 줄이 있는 것은 엄마 지렁이라며 진지하게 설명을 해 줍니다.(아~ 그렇구나^^;) 고구마는 지렁이 굵기 만한 것부터 꽤 알이 굵은 것까지, 모두 모으니 바구니 바닥을 채웁니다. 원두막에 앉아 고구마 줄기를 따고 있으려니 조안이가 거듭니다. 나머지 아이들은 철봉에 매달리고, 그네를 타며 까르르까르르.
추적추적 비가 오는 저 산너머로 웃음 소리가 퍼져나갑니다.
가을의 마지막 절기인 상강. 그 첫째 날 풍경이었습니다.
 
2011년 10월 25일 불 날(상강 2일째)
손끝에 스치는 기운이 차가운 아침입니다. 오늘은 옥선 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들기를 못하셨고 초등의 임정훈 선생님께서 참관을 오셨습니다. 민교는 엄마차를 타고 먼저 유치원으로 올라가고 다섯 아이들만 콩콩콩 체조를 합니다. 아이들은 임정훈 선생님이 낯설지 않은가 봅니다. 동인,동진이의 말소리도 평소와 다름이 없습니다. 민교는 뭔가 재미있는 걸 보여줘야겠다 싶은지 고추를 내놓고 유치원을 뛰어다니며 평소보다 과한 행동을 합니다. 아이들 모두 참관 오신 선생님을 반갑게 대해주고 선생님도 번갈아가며 놀이기구가 되어주십니다.
산책을 나가니 환한 햇살이 오랜만에 반갑습니다. 선생님들이 감염 발색을 하느라 천을 널고 있는 사이 민교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습니다. 겁이 많은 민교가 아니나 다를까 바늘은 절대 안 된다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니 참 안쓰럽습니다. 작은 족집게로 어찌어찌 뽑아내니 더 이상 아프지 않나 봅니다. 그리고는 무성하게 자란 풀을 뽑아다 모래밭에 정원을 꾸미는 아이들 사이에 어울려 놀이를 합니다.
 
2011년 10월 26일 물 날 (상강 3일째)
하얀 서리가 내린 물 날 아침. 아이들은 입에서 연기가 난다며 “하아~” 하고 입김을 불어 보여 줍니다. 입속 아궁이에서 불을 때나 봅니다. 유치원에 들어온 아이들은 옥선 선생님이 왔다며 달려와 반갑게 안깁니다. 오늘도 임정훈 선생님께서 유치원 참관을 하십니다. 아이들, 특히 남자 아이들은 새 놀이기구라며 선생님께 매달리고 펄쩍 들어 올려달라며 좋아합니다.
산책을 나갈 즈음에 햇살이 따뜻해집니다. 선생님들은 감염한 천을 널고 아이들은 둘 씩 짝을 지어 놀이를 합니다. 풀숲에서 셔요셔요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먹고 있는 동인이와 동진이는 꼭 두 마리의 토끼 같습니다. 유선이와 조안이는 밭에 꽃을 심는다며 분주히 움직이고 동하와 민교는 나무칼과 나무총 등의 무기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냉이를 캐러가자고 해도 이미 놀이에 빠져있던 아이들. 별로 반응이 없더니 동인, 동진이가 따라나서자 민교와 동하도 냉이를 캡니다. 지난번보다 냉이 캐는 솜씨가 늘어 동인, 동진이는 가끔 뿌리까지 캐기도 하고 동하는 막대기로 잘도 캐옵니다. 그런데 산딸기 발견! 모두의 관심은 산딸기로 옮겨가고 아리에게 준다며 닭장으로 뛰어갑니다. 그러더니 냉이 캐던 것은 까맣게 잊고 철봉에 매달려 날 좀 보라며 원숭이처럼 매달리기. 뱅그르 돌기 등을 보여주고는 자랑스러워 합니다.
 
2011년 10월 27일 나무 날 (상강 4일째)
햇살이 눈부시게 맑은 나무 날. 유치원 아이들은 갑사로 가을 빛 여행을 갑니다.
황금빛 벼들이 춤을 추는 들길을 지나 노란은행나무와 붉은 빛 나뭇잎들이 손을 흔들어 반겨주는 갑사로 올라가는 길. 오늘도 사천왕 만나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렇다고 하자, 사천왕이 무서운지 갑자기 민교는 스스로 돗자리도 개고, 도시락도 정리하고 선생님 안마까지 해주며 분주하게 착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민교는 팬티를 안 입고 다니니 발가벗고 사천왕께 혼나면 어쩌냐고 했더니 긴장한 얼굴입니다.^^ 드디어 사천왕 앞에 도착해 모두들 두 손 모아 잘못을 빌고 부처님을 만나러 갑니다. 법당은 초하루 법회를 하느라 사람들로 북적이니 부처님 만나는건 포기하고, 따스한 햇살이 내려오는 마루 끝에 앉아 잠시 놀이를 합니다. 어디선가 주워온 돌들을 두 손 가득 들고는 “몇 개일까요?” 하며 맞춰보라고 합니다. 동하는 일부러 손을 크게 만들어 맞추기 어렵게 하기도 하고 동인이와 동진이는 손가락 사이로 돌들이 튀어나와 있네요.^^
산길을 돌아 한적한 법당 앞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늘 먹던 철당간지주에서 왜 안먹느냐고 물어보는 아이들. 날이 쌀쌀해 햇살이 잘 비치는 곳을 선택한 것인데 갑자기 바뀐 흐름이 어색한가봅니다.
 엄마, 아빠, 할머니께서 정성들여 싸주신 김밥과 초밥 볶음밥을 나눠먹고 놀이를 합니다. 돌 위에 벌렁 드러누워 환자가 되면 그 주위에 모여앉아 치료도 해 주고 노는가 싶더니 어느새 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뛰어다니며 싸움놀이를 합니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뭐하냐고 물으면 대답도 해줍니다. 마른 풀 숲을 뛰어다니려니 옷에 풀씨들과 도깨비 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네요.
그런데 벌써 소화가 다 되었는지 민교는 배가 고프다고 합니다. 다시 짐을 챙겨 주차장으로 내려갑니다. 가는 길에 긴 나무뿌리를 주워 긴 줄넘기도 하고 예쁜 빛깔의 나뭇잎을 구경하기도 합니다.
아침간식을 먹었던 은행나무 아래에 앉아 간식을 먹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노랑 은행빛과 빨간 단풍빛 그리고 파란 하늘빛 아래 행복했던 가을빛 여행을 마무리 합니다.
 
2011년 10월 28일 쇠 날 (상강 5일째)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살.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단풍들로 수를 놓은 산. 가을빛 옷을 입은 나무들이 살랑살랑 손을 흔드는 가을학기 마지막 날. 유치 아이들만 들기를 하는 날입니다. 마당을 쓸고 탱자효소차를 끓이고 있으려니 아이들이 들어옵니다. 오늘은 원정이도 유치원에 놀러 왔습니다. 원정이가 가져온 땅콩과 함께 사과를 먹고 놀이를 합니다. 갓난아기 인형을 등에 업고 테이블을 차려놓고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펠트 끼우기도 합니다. 그 사이 현미선생님은 지난 봄에 담아두었던 산야초효소를 걸러줍니다. 그런데 단내가 풍겼는지 벌들이 유치원까지 날아듭니다. 걸러낸 찌꺼기를 버린 곳에는 벌떼가 모여들어 윙윙 거립니다. 아침열기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조안이가 원정이에게 오늘은 쇠 날이니 보림사에 갈거라며 설명을 해 줍니다. 늘 하던 일들이 아이들 몸에 스며들어 있어 다음에 뭘 할지 예측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어제 이미 빛여행을 다녀와서 오늘은 짧은 산책을 하기로 합니다. 호미를 하나씩 들고 초등텃밭으로 갑니다. 가을햇살에 향긋하게 자라난 냉이를 캡니다. 원정이는 이게 냉이냐고 물어보고 조안이는 열심히 설명을 해주며 텃밭 위, 아래를 옮겨 다니며 냉이를 캡니다. 어느새 바구니가 된 모자에 냉이가 수북이 쌓였네요. 민교만 텃밭을 힘차게 뛰어다니며 놀더니 밤을 따러가고 싶다고 합니다. 혼자는 싫었는지 이 아이 저 아이에게 밤을 따러 갈 건지 물어봅니다. 다행이도 냉이 캐기에 실증이 났던지 여섯 아이들 모두 하나, 둘 호미와 냉이 바구니를 던져놓고는 밤 밭으로 달려갑니다.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다니며 밤을 찾아보지만 작은 밤 두 개만 찾아내 나눠 먹자고 합니다.
이젠 밤도 다 익어 떨어졌고 감도 익어 떨어지고 황금빛 벼들은 베어지고 단풍이 들었으니 가을빛을 다 했나봅니다. 이렇게 가을이 가고 있었네요.
 
참고로 아이들은 ‘겨울’이라는 말에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답니다.
눈이 있어 놀이가 풍성해지니 그런가봐요.
아이들은 가을은 싫다고 합니다. 겨울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어른인 난 가을이 훨~씬 좋은데.......
하는 생각을 하며 폴짝이는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겨울’하면 눈 많이 와 사고 날 걱정, 날 추워 얼음 얼면 힘들 걱정부터 하는
어른인 내가
하얀 눈이 내리면 신나게 놀 일들은 생각하는
이 아이들에게
육체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정신의 집마저 줄 수 없다는
카릴지브란의 싯구를 다시 되새겨 보며,
 
겨울 눈처럼 맑고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했던 가을학기를 마무리 합니다.
 
자~ 그럼 남은 가을 잘 보내드리고 겨울에 다시 만나요~~

조영미 11-11-04 03:53
 
정말 소중한 글입니다. 겨울 학기도 지나면, 모두 정리해서....유치원 책자로 만들어야겠어요.
정은영(석환) 11-11-04 20:09
 
간직할 소중할 글이지요. 책자로 나오면 정말 좋겠네요. ^^
박병현/조미란(… 11-11-11 09:11
 
진짜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ㅎㅎ 항상 감사합니다.